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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쁨”에 초대해 주신 김남조 선생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가톨릭문인회에서 맺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은 늘 나에게 든든한 어른이셨고, 자상한 큰누님 같은 분이셨다. 어쩌면 이 초대전은 신앙과 예술 안에서 그 동안 선생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시던 모든 은혜로움을 갈무리하는 상징적 의미가 담긴 선물이라 여겨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는 ‘로고스의 암호’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어쩌면 거창한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듯하지만 사실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나에게 예술이란 초월자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의 의미를 해독하려는 실존적 인간의 ‘뜨거운 열정과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야스퍼스가 ‘실존과 초월자의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존재 탐구의 길을 ‘암호해독(Chiffrelesen)’으로 보았듯이 나는 로고스의 암호(The cord of logos)라는 주제를 내 작업의 출발로 삼았다. 그 후 이 작업은 ‘부루 로고스(the Blue logos)’에 이어 이번 전시의 ‘로고스의 불(logos ignis)’에 이른다.

​작가 조 광호
둘,
‘로고스의 불’(logos ignis)에 대하여
​조광호 작가 노트

1980년대 사제로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에 갔을 때 나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전적 ‘아름다움’(의미, 선, 색채, 형태 등)을 포기할 뿐 아니라 전적인 반기를 들고 있는 현대회화에서 과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였다. 몇 차례 보따리를 풀었다 쌌다 하는 가운데 나는 지독히 무신론적이고, 세속적인 세계에서 오히려 더 종교적이고 초월적 세계로 지향하는 “숭고의 미학”(지각 밖의 초월적인 그 어떤 것을 표현)이 바로 현대추상미술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남몰래 전율하였다.

현대미술도 예술의 궁극적 관심인 초월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종교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초월성에 접근하려는 작가들의 내밀한 열성은 참으로 ‘숭고’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의 사제로서 교회 전례미술에 전염하였지만 나에게도 이러한 ‘숭고의 미학’은 한결같은 내 작업의 중심에 변치 않은 주제였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지각 밖의 초월적인 그 어떤 것. 존재의 실상을 향해, “초탈(Abgeschiedenheit)하고 돌파(Durchbruch)” (마이스트 엑하르트)해 가기 위해 ‘개념이 아닌 개념’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ohne Warum)’ 화면 위에서 나의 작업은 자유로운 선과 색채, 형태의 부정적 묘사의 퍼포먼스이기를 내심 기대하는 작업이었다.

작업의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큰 위로를 받으며 때로는 강신무의 신내림처럼 때로는 “굶주린 듯, 목마른 듯, 텅 비고 자유롭고, 순수한 전율 속에서 ‘존재의 드러남’을 향한 무위적 행위”로 ‘역동적이고 황홀한 존재론적 퍼포먼스’가 자아도취적인 환상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신앙 안에서 내 생명이 만물의 근원으로부터 나와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감을 믿듯이 나의 소박한 창조 행위도 우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무차별적 초월자이신 하느님의 숨결에 맞닿아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

이번 전시는 ‘로고스의 암호’에서 파생된 주제로써 “불의 로고스(logos ignis)”이다. 이 전시의 일부는 일필휘지의 단순한 붓 드로잉이고 다른 하나는 숯을 오브제로 다룬 하이퍼 리얼리티와 실재를 혼합한 작품이다.

 

이 작업은 2002년 모란미술관 초대전에서 선보인 ‘숯의 명상’과 그 뿌리를 함께한다.

특히 두 번째 ‘숯을 오브제로 다룬 작업은 ‘숭고미학’과 함께 현대미술의 큰 축을 이루는 시뮬라르크(복제의 복제) 미학에 의거한 작업이다. 하이퍼 리얼리티로 묘사한 숯으로 실재보다 더 실재와 같이, 복제의 복제로 ‘가상이 더 실제’로 보이는 원본이 사라진 세계를 표현하였다. 이차원적 회화공간의 증강현실을 표현한 것이지만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이 경계에서 원본이 상실된 복제와 닮은 복제로 지극히 세속적인 이 시대의 다원주의적 시뮬라르크를 선보인다.

이는 곧 ‘숭고의 미학’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시뮬라르크 미학을 통합하는 작업을 평면 회화에서 시도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나의 작업이 형식면에서는 현대미술의 큰 흐름에 머물되 ‘무의미와 이미지 파괴(iconocrasch)’를 전사의 전리품처럼 앞세우는 창작세계에서 나의 작업은 끝까지 내용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뜻과 의미를 탐색하고 모색하는 과정을 감히 선보이는 것이라 할 것이다.

로고스의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에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기에

아무 것도 소유하고자 않기에

아무 이유 없이

피어난 꽃이듯

이름이 없는 그대

 

벌거벗은 신의

텅 비고

자유롭고

순수한 지성으로

초탈하고 돌파해 가는

차별 없는 무위의

그윽한 어둠으로 빛나는

궁극의 실재여

로고스의 불
하나,

注) 이 시는 길희성 박사의 명저 ‘마이스터 엑하르트의 사상’을 요약한 내용을 차용하였음을 밝힌다.

-  조광호의 작가 노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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